현대에도 '괴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미확인동물학자 리처드 프리먼이 우리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동물을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출처 : Atlas Obscura

미확인동물학자 리처드 프리먼(Richard Freeman)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Homo floresiensis )와 같은 다른 인류가 불과 12,000년 전에 멸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의 설인(알마스티로 알려짐)과 같은 인류가 존재하더라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도네시아 설화에 따르면, 수마트라 고원 깊숙한 곳에 있는 괴물 꽃과 태양곰 사이에서 '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오랑 펜덱으로 알려진 4피트 높이의 영장류가 두 발로 걷는다. 그리고 거의 원형에 가까운 호수의 잔잔한 물 아래, 콩고 전설에 따르면 마함바라고 알려진 거대한 50피트 악어가 카누 전체, 즉 승객 과 모든 것을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생물이나 그들과 같은 다른 전설적인 미확인 동물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미확인 동물학자인 Richard Freeman은 이 신비한 동물이 저 너머에 있다고 믿습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전문 미확인 동물학 조직인 Fortean Zoology 센터 의 동물학 책임자로서 그는 몽골 죽음의 벌레를 찾기 위해 고비 사막에서 거대한 아나콘다를 찾기 위해 브라질 열대 우림에 이르기까지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Freeman은 "어떤 사람들은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계시'를 의미하는 '괴물'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미확인 생물을 가리키는 데 매우 적합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Atlas Obscura는 In Search of Real Monsters라는 새 책을 최근 출판한 Freeman과 함께 신비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미지의 것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집착, 동물학의 전성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특이하지만 과학적으로 알려진 동물의 목격을 통해 미확인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동물들은 한때 전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마운틴 고릴라는 때때로 산에서 내려와 나무 가지를 찢고 코끼리를 때려 죽이는 민담에 나오는 털이 많은 괴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크고 무섭게 보이기 때문에 그들 주위에 세워진 신화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꽤 차분한 동물이에요.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이야기에는 진실이 담겨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합니다. 남아메리카에는 거대잎개구리라고 불리는 큰 청개구리가 있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이 개구리가 마법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그 분비물이 사람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고 배고프고 목마르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생화학자들이 그 분비물을 조사했을 때 , 그들은 그것이 갈증과 배고픔을 무효화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운틴 고릴라는 1902년 독일 육군 장교 Robert von Beringe가 한 마리를 쏘기 전까지는 전설 속의 괴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역사상 사람들이 미확인 생물에 대한 생각에 더 개방적인 시기가 있었습니까?
빅토리아 시대에는 많은 탐험과 발견이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장소를 탐험하고 새로운 종을 찾으세요. 불행하게도 그들은 모두 빅토리아 시대에 총을 쏘았습니다. 서양에 알려지지 않은 생물에 대한 원주민 이야기가 전해지면 과학자들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프리카 정글의 털이 많은 거인이 고릴라로 밝혀졌습니다. 기린과 얼룩말의 잡종인 짐승에 관한 콩고 이야기는 오카피라고 불리는 기린의 목이 짧은 친척으로 밝혀졌습니다. 20세기 초에도 코모도왕도마뱀과 자이언트 판다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은 동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합니다. 
신비한 동물을 찾는 일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고 생각하시나요?
패러다임 전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보면 사후세계를 가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확인 동물학은 동물학의 한 분야일 뿐입니다. 과학에 알려지지 않은 동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크고 무서운 괴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확인동물학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쿠바와 남부 주에 서식하는 큰 딱따구리 종인 상아부리딱따구리의 재발견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한 선례가 있습니다. 호주의 밤앵무는 수십 년 동안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 재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은 잔지바르에서는 표범이 멸종된 줄 알았으나 최근 재발견되었습니다. 따라서 표범이 잔지바르처럼 작고 인구가 많은 섬에서 눈에 띄지 않고 살 수 있다면 태즈메이니아 늑대는 확실히 더 크고 인구가 적은 태즈메이니아에서 살 수 있습니다. 멸종된 줄 알았던 동물이나 새로운 동물 등 이런 것들이 늘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휴대폰 카메라와 위성 이미지 세계에서 미확인 동물학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세상은 완전히 탐험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위성 사진 덕분에 세계가 탐험되고 지도화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숲의 덮개를 통해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중앙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남미에는 미지의 지역이 많이 있습니다. 동물학의 위대한 시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항상 발견되고 있습니다.
미확인생물을 발견한 가장 가까운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그건 2008년 러시아였습니다. 우리는 코카서스 산맥의 작은 마을에서 2마일 떨어진 버려진 농가를 측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 야생인이나 알마스티를 찾고 있었습니다. 소련은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 모스크바 다윈 박물관의 동물학 책임자였던 표트르 스몰린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된 예티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과학자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습니다. 카메라 트랩을 설치했습니다. 고기와 과일을 내놓고 기다렸습니다. 새벽 2시 30분쯤 우리는 몸을 녹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달빛과 별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밖에서 우리는 이 크고 목구멍 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베란다에 뭔가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뭐든지 크네요. 그것은 문을 지나 별빛과 달빛을 가렸다. 그러니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키는 적어도 7피트는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우리는 모든 카메라 트랩을 확인했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식물 사진뿐이었습니다.

태즈메이니아 늑대(또는 사일라신)는 1936년에 멸종되었지만 프리먼은 육식성 유대류가 재발견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확인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사이언스온 2014.4.4. 
손재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1] 신비동물학으로 되짚어 보는 자연사 연구
사실 신비동물학이 자연사 연구와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동물도 과거에는 ‘신비동물’이었던 적이 있다. 예컨대 원시 물고기 실러캔스가 그렇다. 자연사 이야기를 하면서 “유치하게 웬 괴물 타령인가?” 할 것이다...다만 신비동물학을 통해 과학으로서 자연사 연구가 무엇이고, ‘멸종의 시대’에 그 소임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 그림1. 대표적인 신비동물들.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했다는 ‘빅풋’, 영국 네스 호수의 공룡 ‘네시’(이 사진은 나중에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반인반어 모습의 ‘인어’, 그리고 몽골 사막에 사는 거대 벌레로 알려진 ‘몽골리안 데스 웜(Mongolian death worm)’. 출처/ Wikimedia Commons (사진설명 고침 2014년 4월7일)

자연사(natural history)라는 연구 분야는 자연 속에 있는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탐구하는 오랜 전통의 자연과학 분야 학문이다. 근대 과학이 태동하면서 우리는 자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자연은 여전히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자연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 중에는 유사과학(pseudoscience)으로 외면당하는 분야도 있다.
신비동물학(cryptozoology)은 그 중 하나이다. 신비동물학은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동물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1] 어린이들이나 열광할 법한 인어나 유니콘(Unicorn)을 비롯해, 전설에 등장하는 빅풋(Bigfoot), 레프리콘(Leprechaun), 늑대인간, 그리고 공룡의 목격담에 이르기까지 신비동물학은 그야말로 믿기 힘든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두산 ‘천지괴물’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자연사 이야기를 하면서 “유치하게 웬 괴물 타령인가?” 할 것이다. 나 자신도 신비동물학의 신봉자가 아니므로 신비동물학을 소개할 생각은 없다. 또한 신비동물학을 신랄하게 비판해서 동심 속의 환상을 깨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것은 산타 할아버지가 루돌프를 타고 굴뚝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전설일 뿐이야 하고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만큼 가혹한 처사일 것이다. 다만 신비동물학을 통해 과학으로서 자연사 연구가 무엇이고, ‘멸종의 시대’에 그 소임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실제 발견된 전설의 신비동물들
» 실러캔스 전시물. 출처/ Wikimedia Commons사실 신비동물학이 자연사 연구와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동물도 과거에는 ‘신비동물’이었던 적이 있다. 신비동물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펴면서 ‘약방의 감초’처럼 꺼내드는 예가 있다. 바로 원시 물고기 실러캔스(Coelacanth)이다.
이 신비스런 동물은 계통적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물고기보다는 폐어나 양서파충류에 가깝기 때문에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이 무리는 원래 백악기에 모두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1938년 남아공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있던 마저리 코트니-레티머(Marjorie Courtenay-Latimer)가 인도양의 코모로 제도에서 한 어부가 잡은 물고기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러캔스를 발견해 당시 동물학계를 발칵 뒤집었다.[2]
또 다른 좋은 예로 대왕오징어(Giant squid)를 들 수 있다. 이 거대 동물은 기원전 4세기 경의 유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헌에 이미 기록했지만, 그 실체는 뱃사람들 사이의 전설로 치부돼 왔다. 한동안 이 동물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증거는 주요 천적인 향유고래(Sperm whale)의 몸에 난 빨판 자국뿐이었다. 정작 과학적 문헌을 통해 대왕오징어가 신화 속 동물에서 현생 종으로 인정받은 것은 1850년대 무렵이었다.[3]

» 그림2. 대영박물관에 표본으로 전시된 실러캔스(위). 백악기에 멸종된 같은 계통의 화석과 비교해 거의 차이가 없다 (아래 왼쪽).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대왕오징어 표본(아래 오른쪽). 2005년 스페인의 어선 그물에 걸린 녀석으로 전체 길이가 11미터에 달한다. 사진/ 손재천

실증표본 대신 흔적표본을 찾아
그동안 대왕오징어는 죽어서 해안가로 밀려나온 표본이 전부였다. 워낙 귀한 동물이라 전 세계에 표본도 몇 점 없는데, 내가 근무하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는 2점이나 전시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표본조차 귀한 대왕오징어의 생태는 전적으로 추측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의 저명한 어류학자인 쿠보데라 츠네미(Tsunemi Kubodera)는 대왕오징어의 살아 있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심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평생을 기다린 끝에, 2004년 드디어 먹이 먹는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3] 기약 없는 기다림을 무던히 견딘 그의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 어류학자의 인내와 열정은 빅풋이나 네스호의 공룡 네시를 쫓는 사람들의 열정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신비동물이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검증 가능한 물리적 증거이다. 실러캔스와 대왕오징어는 실증 표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빅풋이나 네시와는 다르다. 이와 같이 과학으로서 자연사 연구는 언제나 표본을 그 시작으로 한다. “~라더라” 식의 목격담이나 어렴풋한 사진 몇 장만으로는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설득력이 부족한 증거에 의존하는 한 신비동물학은 유사과학일 수 밖에 없다.

» 고래를 공격하는 대왕오징어를 표현한 전시물. 출처/ Wikimedia Commons

사실, 빅풋을 포함한 인류형 신비동물을 연구하는 신비동물학자들은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보면, 전설 속 인어나 늑대인간을 쫗는 신비동물학자들과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들은 물리적 증거로 실증 표본이 아닌 발자국과 같은 흔적 표본에 주목한다. 수집한 발자국을 해부학적으로 연구한 자료([4] Meldrum & Zhou, 2012)는 과학적 방법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것은 고생물학에서 흔적 화석을 바탕으로 과거 생물의 모습과 생활을 유추하는 것과 흡사하다.
최근 복간한 <신비동물학저널(Journal of Cryptozoology)>의 편집장인 칼 슈커 (Karl Shuker)는 “신비동물학이라고해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에 따른다면, 더 이상 유사과학이 아니다”고 주장한다.[5] 이 저널은 주류 저널과 마찬가지로 동료심사(peer review) 방식으로 엄선한 신비동물학 논문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얼마 전 스미소니언의 문서창고를 정리하면서 나온 귀한 자료를 잠시 전시한 적이 있다. 그 중에는 특이한 자연사 연구자로 알려진 페리 터너(Perry E. Turner)의 아주 흥미로운 미발표 논문 원고가 담긴 서류상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서류상자를 열면 여러 편의 파일이 보이는데 “빅풋 마운틴맨(Bigfoot Mountainman)”이라고 레이블을 붙인 것이 단번에 눈에 띈다.
그 중 한 편은 장문의 원고답게 긴 제목을 달고 있다. 제목을 대충 번역하면 “원시 잠자리의 포식자이며, 태평양 연안 북미에 고유한 원시 인류의 신아과, 신속, 신종인 빅풋”이다. 요컨대, 미국의 빅풋 혹은 새스콰치(Sasquatch)라 불리는 신비동물을 새로운 종으로 기재하는 내용이다. 원고를 찬찬히 읽어볼 기회가 없어 아쉽지만, 제목에서 주는 디테일을 고려해볼 때, 이쯤되면 신비동물학을 유사과학이라고 싸잡아 흠을 낼 수만도 없을 것 같다.

» 그림3. 페리 터너(Perry E. Turner)의 빅풋에 대한 미발표 원고. 좌측은 그가 연구한 일련의 논문 원고 파일이고, 우측은 그중 한 편으로 빅풋을 새로운 종으로 기록하는 논문이다. 사진/ 손재천

목격담 통한 모델링 때론 순기능
신비동물학자는 과학계에서 ‘변두리 자연사학자’일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슈퍼 스타이다. 실제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신비동물을 좇는 사람들이 자주 소개된다. 가끔 신비동물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의 탈을 쓴 허무맹랑한 이론을 들이대는 것만 뺀다면, 자연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순기능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신비동물학은 신비동물의 존재 근거로 “지구상에는 인류의 발길이 제한된 곳이 여전히 많이 있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생물들도 많이 있다”는 점을 든다. 이것은 사실 자연사 연구도 그 궤를 함께하고 있는 부분이다. 신비동물을 찾기 위해 신비동물학자들은 미답의 자연을 밤낮으로 감시한다. 박물관 표본에만 의존하는 자연사 연구자들에게는 귀감이 될 만하다.
신비동물학의 또 다른 순기능은 보전생물학적 관점에서 엿볼 수 있다. 신비동물은 생체표본이 없다. 그만큼 개체수가 적다는 것이 신비동물학자들의 설명이다. 신비동물학자들은 이렇게 적은 개체군을 지탱할 수 있는 먹이사슬과 은신처가 있는 곳을 신비동물의 서식지로 지목한다. 이 요건에 부합하는 곳은 흔히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이다. 그래서일까? 부탄에서는 미국의 빅풋과 유사한 전설 속 동물인 예티(Yeti)를 보호하는 자연보호구가 있다고 한다.[6] 다소 황당하게 들리지만 서식지 보전을 통한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만 있다면, 깃대종(flagship species,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하는 중요 동·식물)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신비동물이 되면 또 어떤가?
2009년에 세계적인 저명 학술지 <생물지리학 저널(Journal of Biogeography)>에 다소 생뚱맞은 논문이 한 편 실렸다.[7] 제목이 흥미롭게도 “서부 북미에서 새스콰치의 분포 예측: 생태적 지위 모델링이 말하는 것(Predicting the distribution of Sasquatch in western North America: anything with ecological niche)”이다. 신비동물을 주류 저널에서 다룬 아마 유일한 예가 아닐까 싶다.
논문 저자들은 일반인의 목격담을 생태적 지위 모델링에 사용할 때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새스콰치 혹은 빅풋이라 불리는 신비동물 사례를 통해 연구했다. 연구팀이 새스콰치의 발자국 흔적과 목격담을 바탕으로 이 동물의 생태적 지위 모델을 구축해보니, 미국 흑색곰(Ursus americanus)의 생태적 지위 모델과 겹쳐 나타났다다. 연구팀은 이런 점을 들어 대부분의 새스콰치 목격담이 곰을 오인한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논문에서 새스콰치의 존재를 증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만, 연구결과는 수소문에만 의존해야 하는 희귀동물의 서식지 모델링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신비동물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도운” 셈이다.
자연사 연구에 신비동물학을 포함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비동물에는 상상 속 동물뿐 아니라 오래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태즈마니아 늑대(Thylacine)’나 ‘자이언트 나무늘보(Ground sloth)’의 목격담이 포함된다. 우리가 자연사 연구를 등한시한다면 지금은 존재하는 많은 동물이 언젠가 신비동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자연사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참고 문헌
[1] Wikipedia. “Cryptozoology”. http://en.wikipedia.org/wiki/Cryptozoology
[2] The Fish Out Of Time. “Discovery” of the Coelacanth. http://www.dinofish.com/discoa.htm
[3] Wikipedia. “Giant squid”. http://en.wikipedia.org/wiki/Giant_squid
[4] Meldrum, J. and G. Zhou (2012) Footprint evidence of the Chinese Yeren. The Relict Hominoid Inquiry 1: 57-66. http://www.isu.edu/rhi/pdf/Footprint%20Evidence%20of%20Chinese%20Yeren.pdf
[5] Cossins, D. (2013) Monster hunting 2.0. The Scientist. http://www.the-scientist.com/?articles.view/articleNo/34163/title/Monster-Hunting-2-0/
[6] Gordon, N. (2005). A most unusual sanctuary, where the Yeti roams free. High Country News, July 25, 2005. http://www.hcn.org/issues/302/15666.
[7] Lozier, J. D., P. Aniello, and M. J. Hickerson (2009) Predicting the distribution of Sasquatch in western North America: anything with ecological niche. Journal of Biogeography 36: 1623-1627.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j.1365-2699.2009.02152.x/abstract

» 그림4. 왼쪽은 미국 서부에서 나온 빅풋 목격담을 지도에 표시한 것이다. 오른쪽은 빅풋과 미국 흑색곰의 분포를 생태적 지위 모델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를 비교한 것이다. 이 둘의 분포에 차이가 없다는 가정 하에 그린 분포 모델에 실제의 빅풋 목격담(화살표)을 대비해보면 모델의 예측 범위 안에 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빅풋과 흑색곰의 예측 분포에 유의한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림은 모두 Lozier, Aniello&Hickerson (2009)[주 7]에서 나온 것이다.

아래 연구내용은 예티학계의 교과서인 위키백과에서 상당부분 참고했으며 맘에 들지않는 부분은 내마음대로 과감히 삭제하고 변경한 과학적으로 엄격하게 검증된 연구자료이므로 반박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예티는 종종 갈색, 회색 또는 흰 털로 뒤덮인 두발 달린 큰 유인원처럼 생긴 동물로 묘사되며, 때로는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Abominable Snowman'으로도 알려진 예티는 히말라야산 지역에서 발견되는 아시아 빅풋 중 하나입니다. 네팔, 티베트, 러시아, 인도에 서식하며, 예티는 아마도 30만 년 전에 아시아에서 살았던 선사적인 유인원인 기간토피테쿠스(Gigantopithecus)에게서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으로 보인다.
기원 불교 신화에 따르면, 예티는 평화로운 생물로, 매우 소심하며 인도의 강들로 형성되는 빙하 위의 짙은 눈동굴에 살았습니다. 현대에는 대부분의 목격과 증거가 K2에서 발견되었다. 예티라는 이름은 티베트어 "Yeh-Tah"에서 유래한다. གཡའ་དྲེད་, Wylie: g.ya' dred, ZYPY: Yachê, a compound of the words Tibetan: གཡའ་, Wylie: g.ya', ZYPY: ya "rocky", "rocky place" and (Tibetan: དྲེད་, Wylie: dred, ZYPY: chê) "bear".프라나반다는 "ti", "te" 그리고 "teh"라는 단어는 곰을 위한 티베트어인 'tre'("dred"라고 말하는데, 'r'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발음되어 'te' 또는 'teh'로 만든다고 말한다. 티베트의 전설은 검은 털을 가지고 있고 키가 약 15피트 정도 되는 가장 크고 사나운 닐모, 약 8피트 높이에 해발 8천에서 10000피트 정도 되는 츄티, 그리고 적갈색 털을 가지고 있고 3-5피트밖에 되지 않는 랑 심봄보 등 세 가지 주요 예티 품종을 묘사하고 있다.
예티는 사전 불교 문화인 레차족을 포함한 이전 문화에서도 언급되었있다. 티베트와 네팔의 수도원은 예티의 몇몇 두개와 뼈를 수집했으며, 그 중 일부는 오늘날 스미스소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 샘플 중 하나는 인간의 뼈로 밝혀졌지만, 박물관에 보관된 다른 샘플들은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21세기의 예티에 대한 목격에 따르면, 예티는 8 ~ 10.5 피트(2.5m~3.5m) 키에 도달하며 갈색, 붉은색 또는 검은색 털을 가지고 거대한, 직립 보행하는 원숭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대중의 오해와 달리 예티는 흰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의 탐험이 예티를 찾기 위해 진행되었지만, 발자국, 뼈 및 털 샘플만 발견되었다.
예티는 아시아의 여러 다양한 지역에 서식하므로 다른 문화에서 눈 사람에 대해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인들이 사용하는 다른 용어는 정확히 똑같이 번역하지는 않지만 전설적이고 토착적인 야생동물을 가리킨다.
미치(티베탄: :ི་དེེ, Willie: mi 준설, ZYPY: Michae)는 "맨베어"로 번역된다.
Dzu-teh – 'dzu'는 "cattle"로 번역되고 전체 의미는 "cattle bear"로 번역되는데, 이는 히말라야 갈색 곰을 가리킨다.
미고이 또는 미고(티베탄: མིརྒོ་, Wylie: mi rgod, ZYPY: Migö/Mirgö)는 "야생인"으로 번역된다.
분만치 – 예티가 흔한 셰르파 커뮤니티 밖에서 사용되는 "정글맨"을 위한 네팔어.
Mirka – "Wild-man"의 다른 이름.지역 전설에 따르면 "죽거나 죽는 것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한다.후자는 1937년 프랭크 스미테의 셰르파들이 작성한 서면 진술에서 따온 것이다
강아드미 – "스노우 맨".
슈에렌(중국어: 雪人) - "설인"
러시아 민속에서 추추나는 시베리아에 거주한다고 하는 실체다.그것은 6~7피트 높이에 검은 털로 덮여 있다고 묘사되어 왔다.[citation needed]유목민 야쿠트족과 퉁구스족의 토착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체격이 좋은 네안데르탈인 같은 사람으로, 가죽을 입고 팔뚝에 하얀 털조각을 달고 있다.가까운 사촌인 알마스티스와 달리 가끔 인간의 육체를 섭취한다고 한다.몇몇 목격자들은 그 동물의 시체에서 꼬리를 봤다고 보고했다.그것은 대략 6에서 7피트의 높이로 묘사된다. 전 세계적으로 "빅풋"과 "아비노블 스노우맨"을 포함한 거대하고 은둔적이며 두 발이 달린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로 있다.
아보미니블 스노우맨이라는 이름은 1921년 찰스 하워드-베리 중위가 1921년 영국 에베레스트 산 정찰 원정을 이끌던 해인 1921년에 만들어졌다. 이 책에서, 하워드-베리는 2만1천 피트(6,400 미터)에 라그파 강을 건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아마도 부드러운 눈 속에서 맨발 남성의 그것과 같은 이중 트랙을 형성한 커다란 노핑 회색 늑대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믿었던 발자국을 발견했다.그는 셰르파 가이드들이 "그 트랙이 '메토캉미'라는 이름을 붙인 '눈의 야인'의 발자국임에 틀림없다고 단번에 추측했다"고 덧붙였다.'메토'는 '맨베어'로, '캉미'는 '눈사람'으로 번역한다.
하워드-베리가 '메토-캉미'라는 용어를 암송한 것과 빌 틸먼의 저서 에베레스트 산에서 사용한 1938년, 틸먼이 티베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메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용어 사이에 혼동이 존재한다."metch"가 오노머라는 추가적인 증거는 런던 대학교 동양과 아프리카 연구학교의 데이비드 스넬그로브 교수에 의해 제공되고 있는데, 그는 "metch"라는 단어는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왜냐하면 "t-c-h"라는 자음은 티베트 언어에 결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서에서는 "메치-캉미"라는 용어가 하나의 출처(1921년부터)에서 유래되었음을 시사한다. "metch"는 단순히 "metoh"의 오식이라고 제안되어 왔다.
'Abominable Snowman'의 사용은 캘커타에서 오랫동안 '미스터맨'에 기고하여 'Kim'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 헨리 뉴먼이 다즐링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베레스트 정찰 원정대'의 짐꾼들을 인터뷰하면서 시작되었다. 뉴먼은 "metoh"라는 단어를 "filty"로 잘못 해석하면서, "Abominable"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설산에서 발견된 예티사진

1937년 프랭크 S.Smythe가 찍은 예티 발자국( 1952년 Popular Science지에 게재된 사진)

티벳의 예티 전설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

목격 
예티는 기원전 6세기부터 2011년까지 히말라야에서 목격되었다. 이것은 기록된 빅풋 또는 털 덮인 인류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H. Siiger에 따르면 예티는 여러 히말라야 사람들의 불교 이전의 믿음의 일부였다.그는 렙카족이 사냥의 신으로서 "빙하의 존재"를 숭배했다는 말을 들었다.그는 또한 번 종교의 추종자들은 한때 'mi rgod나 '야생인'의 피가 특정한 영적 의식에서 사용되었다고 믿었다고 보고했다. 그 존재는 커다란 돌을 무기로 들고 휘파람 소리를 내는 유인원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었다.
1832년, 제임스 프린셉의 아시아 밴갈 학회 저널에는 북부 네팔의 트레커인 B.H. 호치슨이 기록한 내용이 게재되었다. 호치슨은 긴 검은 털로 덮인 큰 양발 동물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호치슨은 그것이 오랑우탄일 것으로 믿었다.
"사원에서는 중앙 지역에 '반다르'라는 지역 원주민 원숭이를 소개했는데, 그곳에서는 사원 주변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번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냥꾼들은 카차르에서 '야생인'이 나타나 총을 쏘지 않고 달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우랑우탄이었을 것이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그 생물을 '카코데몬' 또는 '라크샤스(악마)'로 착각하고, 쏘지 않고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직립으로 움직였고, 긴 검은 털로 덮여 있었으며, 꼬리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보고된 발자국에 대한 초기 기록은 1899년 로렌스 와델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나타났다.와델은 자신의 가이드가 지문을 남긴 커다란 유인원 같은 생물에 대한 설명을 보고했는데, 와델은 곰이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와델은 유인원 같은 두발 달린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러나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심문한 많은 티베트인들 중 어느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인 사례를 줄 수 없었다"고 썼다. 최종적인 조사에서는 항상 누군가가 들은 것으로 해결되었다.
20세기 초 서양인들이 이 지역의 많은 산을 등반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으며 가끔 이상한 생물체나 이상한 발자국을 보았다고 보고하면서 보고 빈도가 증가했다.
1925년, N. A. 사진작가 겸 왕립지리학회의 회원인 톰바지는 제무 빙하 근처에서 약 15,000피트(4,600m) 떨어진 곳에서 한 생물을 보았다고 쓰고 있다.톰바지는 이후 약 200~300yd(180~270m)에서 1분 정도 관찰했다고 썼다."분명히 윤곽이 잡힌 모습은 인간과 똑같았지, 직립보행을 하고 이따금씩 멈춰서서 어떤 왜소한 덤불을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맞은편에서 어두컴컴하게 나타났고, 내가 알 수 있는 한 옷을 입지 않았다." 약 2시간 후 톰바지와 그의 동료들은 산을 내려와서 이 동물의 발자국을 보았는데, 이 지문은 "사람의 지문과 비슷한 형태지만 가로 세로 4인치 세로 6~7인치밖에 되지 않는다"고 묘사되었다.그 발자국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두발 달린 것들이었습니다."
예티에 대한 서양의 관심은 1950년대에 극적으로 최고조에 달했다.에릭 쉬튼은 1951년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려고 시도하는 동안 해발 6,000m (2만 피트)의 눈 속에서 많은 대형 지문을 찍었다.이 사진들은 철저한 조사와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예티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지문이 녹는 눈으로 인해 왜곡된 평범한 생물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터 번은 1948년 제무 빙하 근처의 인도 북부 시크킴에서 인도에 있는 영국 공군 임무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예티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1954년 데일리 메일 눈사람 탐험 동안 등산 지도자 존 안젤로 잭슨은 텡보체 곰파에서 예티의 상징적인 그림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에베레스트에서 칸첸중가까지 첫 여행을 했다. 잭슨은 눈 위의 많은 발자국을 추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 대부분은 식별할 수 있었다.그러나 식별이 불가능한 큰 발자국이 많았다.이러한 평평한 발자국과 같은 움푹 들어간 자국은 침식과 바람과 입자에 의한 원래의 발자국 확대에 기인했다.
비스와모이 비스 박사는 1954년 데일리 메일 예티 탐험 동안 팡보체 예티 두피를 검사하고 있었다. 1954년 3월 19일 데일리 메일은 팡보체 수도원에서 발견된 예티 두피로 추정되는 곳에서 원정대가 모발 표본을 채취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실었다.그 털들은 희미한 빛에서는 검은색에서 짙은 갈색으로, 햇빛에서는 여우처럼 빨갛게 되었다.이 머리카락은 인간과 비교 해부학의 전문가인 프레데릭 우드 존스 교수가 분석했다.연구 기간 동안, 털은 표백되고, 부분별로 잘라지고, 현미경으로 분석되었다.이 연구는 털의 마이크로그래프를 가져와서 곰이나 오랑우탄과 같은 알려진 동물의 털과 비교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존스는 그 털들이 실제로 두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그는 이마 밑부분에서 머리를 가로질러 달려와 목덜미에서 끝나는 능선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없다고 주장했다. 존스는 팡보체 털을 채취한 동물을 정확히 찾아낼 수 없었다.
스와보미르 라위츠는 1956년에 출판된 자신의 저서 '롱 워크'에서 자신과 다른 몇몇 사람들이 1940년 겨울에 히말라야를 건너고 있을 때,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 속에서 이리저리 뒤뚱거리는 두 발 달린 동물들에 의해 몇 시간 동안 그들의 길이 막혔다고 주장했다.
1957년에 시작된 톰 슬릭은 예티 보고서를 조사하기 위해 몇 가지 임무에 자금을 지원했다.1959년, 예티 대변은 슬릭의 탐험대 중 한 곳에 의해 수집되었다; 대변 분석 결과 분류할 수 없는 기생충이 발견되었다.미국 정부는 예티를 찾는 것이 미국의 탐험을 위한 세 가지 규칙을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네팔인 허가를 얻고, 자기 방어를 위해서 외에는 예티를 해치지 않으며, 네팔 정부가 예티의 발견에 대한 어떤 뉴스 보도도 승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1959년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인도를 방문하던 중 인도에서 런던으로 비행할 때 짐 속에 숨겨 이른바 팡보체핸드를 밀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드문드 힐러리 경의 예티 원정
에드문드 힐러리 경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반한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53년 5월 29일에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이 29,035피트 (8,850m) 높이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던 중 커다란 발자국을 보았다고 보고했다. 텐징은 커다란 유인원의 것이라고 믿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유명한 등반가이자 네팔의 뉴질랜드 대사였기도 하지만 신비동물학에서는 에드먼드 힐러리를 첫 번째로 예티를 사냥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1950년대, 예티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이 에드먼드 힐러리를 예티 탐험에 이끌었다. 털이 많은 사람 같은 생물에 관한 이야기가 알려져 있었다. 눈과 진흙에서 발견된 발자국들은 네팔, 티베트 및 주변 지역의 외딴 장소에서 일부 이와 같은 신비생물이 활동 중임을 나타냈다.
1952년에는 힐러리와 조지 로우가 산 중턱에서 예티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1953년에는 힐러리가 바룬 콜라 지역에서 예티 발자국을 발견했다. 다음 해에는 힐러리의 팀의 두 명의 영국 구성원이 초양계곡에서 예티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믿음직한 셰르파 친구들은 힐러리에게 인간 크기의 예티를 직접 목격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네팔의 셰르파들은 아시아 산악지대의 여러 유형의 예티를 알고 있었다. 
힐러리가 예티를 찾기 위해 히말라야로 갔을 때, 그와 협력자인 저널리스트 데즈먼드 도이그는 여러 가지 알려진 적이 없는 원숭이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냐르모(Nyalmo)"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힐러리와 도이그는 네팔 북부 중앙에 있는 냐르모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크기 (최대 6m 높이)로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고, 털이 많다고 했다.
1960년 후반, 시카고의 월드 북 백과사전 회사에서 후원 받은 에드먼드 힐러리는 예티를 찾으러 네팔로 향한 실버 허트 원정에 올랐다.힐러리는 쿰중 수도원에서 예티 두피를 빌린 뒤 자신과 쿰조 촘비(마을 이장)가 테스트를 위해 작은 샘플이 잘려나간 런던으로 두피를 다시 가져왔다. 마르카 번즈는 예티 두피 추정 여백에서 채취한 피부와 머리카락 샘플을 정밀 검사해 세로, 청곰, 흑곰 등의 유사한 샘플과 비교했다.번즈는 이 샘플이 세로우의 표본과 매우 유사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아마도 같은 종의 지역적 품종이나 종족, 또는 서로 다르지만 밀접하게 연관된 종일 가능성이 있다.
1960년대까지 예티에 대한 믿음은 부탄에서 비교적 흔했고 1966년에는 이 생물을 기리기 위해 부탄 우표가 만들어졌다. 1970년 영국의 산악인 돈 윌런스는 안나푸르나를 등반할 때 한 생물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이 네 발로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1983년 히말라야 자연보호론자 다니엘 C. 테일러와 히말라야 자연사학자 로버트 L.플레밍 주니어는 네팔 바룬 계곡으로 예티 원정을 이끌었다(Cronin & McNeley에[48] 의해 예티로 추정되는 발자국의 1972년 바룬에서 발견됨).테일러-플레밍 원정대는 또한 비슷한 예티 모양의 발자국(무릎과 두발로 걷는 걸음걸이로 나타나는 호미노이드)을 발견했다.
예티발자국 taken by C.R. Cooke in 1944
예티발자국 taken by C.R. Cooke in 1944
예티발자국 taken by C.R. Cooke in 1944
예티발자국 taken by C.R. Cooke in 1944
Dr. Biswamoy Biswas examining the Pangboche Yeti scalp during the Daily Mail Snowman Expedition of 1954
Dr. Biswamoy Biswas examining the Pangboche Yeti scalp during the Daily Mail Snowman Expedition of 1954
예티의 손이라고 여겨지는 팡보체 핸드(1958년 피터 번이 찍음)
예티의 손이라고 여겨지는 팡보체 핸드(1958년 피터 번이 찍음)

예티 머리가죽을 들고있는 에드문드 힐러리 경

1959년 2월 2일, 아이고르 디야트로프가 이끄는 그룹인 9명의 하이커들이 "디야트로프 고개"로 명명 될 산길에서 캠프를 치고 있었다. 이 이상한 사건은 러시아 우랄 산맥의 콜라트 샤흐의 동쪽 면에서 발생했다. 그 밤, 하이커들은 갑자기 무언가에게 공격당했습니다. 그들을 공격한 것이 빅풋과 비슷한 생물인지 확실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외계인이나 심지어는 사람이 그것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점은 일부 하이커들의 눈과 혀가 정확하게 잘린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하이커들이 왜 죽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2014년에 디스커버리 채널은 "러시아 예티: 킬러 라이브"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아홉 명의 하이커들이 실제로 예티에 의해 살해 된 것으로 추측하고 만들어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죽은 하이커들에게 입힌 상처를 살펴보고 그것이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무언가에 의해 일어났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Russian Yeti : The Killer Lives

히말라야 동물들의 오해가 예티 목격 사례의 설명되기도 했다. 낮은 고도에서 사는 Langur 원숭이인 Chu-Teh, 티베트 파란곰, 히말라야 갈색곰 또는 Dzu-Teh로도 알려진 히말라야 붉은곰이 포함된다. 일부 사람들은 예티가 실제로는 인간 은둔자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부탄으로의 원정에서는 브라이언 사익스 교수가 DNA 분석을 통해 알려진 동물과 일치하지 않는 머리카락 샘플을 얻었다고 보고했다. 
1986년, 유명한 산악인 Reinhold Messner는 예티와의 정면 대결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티를 찾아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1983년의 바룬 계곡 발견은 Taylor, Fleming, John Craighead 및 Tirtha Shrestha에 의한 예티가능성에 대한 3년간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네팔의 바룬 계곡에서의 이 현장 연구는 1984년 매칼루-바룬 국립 공원과 1991년에는 반백만 에이커 이상을 보호하는 매칼루-바룬 국립 공원을 창설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중국 국경을 넘어서는 티베트 자치 지역의 저말롱마 국립 자연 보호 구역도 창설되었습니다. 이는 스위스의 거의 크기와 같은 보호구역 내에서 히말라야의 신비한 동물, 나무에 살고 있는 수줍은 동물, 그리고 그것이 대표하는 히말라야의 신비와 전설이 계속되도록 했다.
2004년 네이처지의 편집자인 헨리 기는 예티를 민속 신앙의 사례로 언급하면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지질학적으로 아주 최근까지 생존했다는 발견은 예티와 같은 신화적이고 인간적인 다른 생물들의 이야기가 진리의 알갱이에 기초하고 있다"고 썼다.
2007년 12월 초, 미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조슈아 게이츠와 그의 팀(Destination Truth)은 네팔의 에베레스트 지역에서 예티의 묘사와 유사한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각각의 발자국은 길이가 33cm(13인치)로 측정되었고, 다섯 개의 발가락이 가로 세로 25cm(9.8인치)로 측정되었다.깁스는 추가 연구를 위해 지문으로 만들어졌다.이 발자국은 아이다호 주립대학의 제프리 멜드럼(Jeffrey Meldrum)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그는 이 발자국들이 가짜거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기에는 너무 형태적으로 정확하다고 믿은 뒤 추가 조사를 한 후 생각을 바꾸었다. 이후 2009년 TV쇼에서 게이츠는 모발에 알 수 없는 DNA 서열이 들어 있다는 결론을 내린 법의학 분석가와 함께 모발 샘플을 제시했다.
2008년 7월 25일 BBC는 디푸 마라크가 인도 북동부의 가로힐스 외딴 지역에서 채취한 털을 영장류학자 안나 네카리스와 현미경 전문가 존 웰스가 영국 옥스포드브룩스 대학에서 분석했다고 보도했다.이들 초기 실험은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유인원 보존 전문가 이언 레드몬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1950년대 히말라야 탐험 때 에드먼드 힐러리가 수집해 옥스퍼드대 자연사 박물관에 기증한 이 모발과 표본의 큐티클 패턴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밝히고 계획된 DNA 분석을 발표했다.
2010년 중국의 과학자와 탐험가 그룹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탐험의 현장이었던 후베이 성의 셴농지아 임업지구에 검색을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에서 열린 2011년 콘퍼런스에서 참가 과학자들과 애호가들은 예티의 존재에 대해 "95%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했다.
2011년 12월 러시아에서 예티가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이 이야기는 한 사냥꾼이 그의 양 한 마리를 죽이려고 하면서 곰과 같은 생물을 봤다고 보고했지만, 그가 총을 쏜 후, 그 생물은 두 다리로 숲으로 뛰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이야기는 국경경비대원들이 고기와 식물을 먹은 고릴라와 비슷한 털이 많은 두 다리의 암컷 생물을 포획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 4월 인도군 등산 원정대가 마칼루 기지 캠프 근처에서 81㎝, 38㎝(32㎝15인치) 크기의 신비로운 '예티'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2003년, 일본의 연구원이자 등산인인 마코토 네부카 박사는 12년에 걸친 언어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는 "예티"라는 단어가 "메티"라는 지역 방언 용어인 곰의 왜곡이라고 가정했다. 네부카는 티베트 계통이 곰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두려워하고 숭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네부카의 주장은 거의 즉각적인 비판을 받았으며, 언어적 부주의로 비난받았다. 예티와 산악 언어를 연구한 라지 쿠마르 판데이 박사는 "히말라야의 신비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단순한 단어 놀음으로 규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2013년 10월에는 영국의 유전학자가 두 동물의 DNA를 비교하여 전설적인 짐승으로 알려진 두 동물의 DNA와 고대의 북극곰 사이의 정체를 밝혀냈다고 말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명예 교수인 브라이언 사익스는 "우리는 히말라야에서 채취된 두 샘플과 노르웨이의 스발바르에서 발견된 고대 북극곰의 샘플 사이에서 정확한 유전 매칭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히말라야 샘플의 DNA가 40,000년에서 120,000년 사이에 거슬러 올라가는 스발바르드에서 발견된 북극곰의 하악뼈 샘플과 100% 일치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부는 이러한 보고된 생물이 멸종된 거대한 유인원인 기간토피테쿠스의 현재 사본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예티는 일반적으로 양발로 서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기간토피테쿠스가 네 다리로 걷는 것으로 생각하며, 그렇게 거대해서, 바르오파이테쿠스와 인간족과 같이 특별히 양발로 걷기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면, 이제 멸종된 유인원에게 현재와 같이 일어설 수 있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Grover Krantz 박사는 기간토피테쿠스의 하악이 넓고 널어져 있어 목 척추가 머리 바로 아래에 위치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직립 자세를 시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예티는 곰과 달리 어깨가 넓으며, 곰은 견봉이 몸에 가까이 위치합니다. 예티는 직립 자세로 걷고, 곰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티는 바위를 던지는 등 원시적인 도구 사용이 가능한 반대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곰은 이를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목견인의 증언은 어떤 곰과도 다른 평평하고 원숭이와 같은 얼굴을 묘사한다. 전반적으로 기간토피테쿠스나 다른 대형 원숭이가 예티에 대한 더 타당한 설명으로 보인다.
2013년에 영국 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익스는 예티의 일부 DNA 샘플이 기존의 동물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대신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고대의 북극곰에 속한다고 과학적으로 확인했다. 이러한 고대 "빙하의 거인들"이 아직도 거대한 산에서 배회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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